트위터 리트윗 신라 왕성 터 ‘경주 월성’에서 1800년전 사로국 거주지 첫 확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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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행복이13
조회 17회 작성일 24-10-05 10:4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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트위터 리트윗 신라의 왕궁이 있던 도성(왕성) 터로 유명한 경주 월성(사적)에서 1800여년 전 사로국 시기의 취락과 의례의 흔적, 각종 토기와 의례 제물인 개의 뼈 등이 처음으로 발굴됐다.사로국(斯盧國)은 신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이전에 존재한 진한의 12개국 중 하나이자 신라의 모체다. 박혁거세가 세웠다는 건국신화가 있는 사로국(서라벌)은 이후 주변 작은 나라들을 하나씩 통합해 내물 마립간(재위 356~402년) 당시에는 진한 전역을 거의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. 이후 지증왕(재위 500~514) 때인 503년에 나라 이름을 ‘신라’로, 최고 지배자의 호칭도 ‘왕’으로 바꿨다.사로국 시기(기원전 1세기~서기 4세기 중엽)의 유물과 유구는 경주 황성동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됐지만 월성에서 발굴되기는 처음이다.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3세기 초중반 사로국 시기의 유물·유구는 신라가 월성을 쌓기 전에 사로국 시기의 주민들이 이미 거주했음을 의.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