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x 리트윗 구매 [이기환의 흔적의 역사] 연 3만6000여 명 동원된 신라 고분…‘타원형’ 작도법으로 설계됐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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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행복이13
조회 19회 작성일 24-09-19 12:33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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x 리트윗 구매 1호부터 155호까지…. 일제가 1915년부터 이른바 고적조사사업을 벌이면서 경주 시내 고분에 붙인 일련번호이다.이중 125호분과 106호분은 예부터 봉황대(125호분)와 전 미추왕릉(106호분)으로 알려져 왔다.단독분으로서는 가장 큰 125호분은 고려~조선을 거치면서 고분이라기보다는 경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알려져왔다. 106호분 역시 어느 시점부터 제13대 미추왕(262∼284)의 무덤으로 지목되어 왔다.(그러나 106호분은 4세기 이후에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이 크다) 나머지 고분은 그저 번호로만 지칭되었다.■무덤인가 전망대인가그러다 1921년 주막집 확장공사 과정에서 우연한 기회에 금관이 출토된 ‘128호분’에 ‘금관총’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었다.이후 금동 장식신발(식리·飾履)이 확인된 ‘126호=식리총’(1924), 금방울(금령·金鈴)이 출토된 ‘127호=금령총’(1...